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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리고 섞인 공간에서 '세상바꿀' 아이디어 300개 탄생
: 관리자  sciart@sciart.or.kr : 2011-07-12 : 중앙.jpg : 1887

‘융합(convergence)’이란 두 글자가 한국 사회를 흔들고 있다. 산업융합촉진법이 나오고, 융합형 인재를 키울 ‘정보기술(IT) 명품인재사업’이 추진 중이다. 대학마다 융합의 이름을 내걸고 대학원과 연구소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전문가들은 21세기는 ‘기술의 대융합’ 시대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식과 과학기술이 더 이상 개별 영역의 담 안에 머무를 수 없을 정도로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SUNDAY가 30여 년 전 이미 융합을 기치로 내걸고 학문의 경계 없는 연구를 해온 미국 MIT 미디어랩을 둘러보고 한국의 융합 현장을 진단했다.

지난달 16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짙푸른 색 찰스강 너머로 보스턴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곳에 자리한 매사추세츠공대(MIT) 캠퍼스로 들어섰다. 앰허스트 가(街)와 에임스 가가 만나는 곳에 6층짜리 세련된 회색 빛 유리건물이 보였다. 세계 융합연구의 산실로 알려진 MIT 미디어랩 신관 건물이다. 기둥을 제외한 대부분의 벽이 유리로 돼 있어 건물 밖에서 안쪽이 훤히 보였다. 안으로 들어섰다. 내부도 건물의 하중을 견뎌야 하는 내력벽과 기둥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투명 유리벽 또는 트인 공간이다. 위층 연구실에서 아래층 쪽 다른 연구실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구조다. 각 연구실로 들어서는 문은 항상 열려 있다. 비밀번호와 홍채·지문 인식기 등으로 2중 3중 무장한 여느 연구실의 삼엄한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다. 안내를 맡은 앨릭잰드라 칸은 “설계 때부터 소통과 융합을 염두에 두고 만든 건물”이라고 말했다.

2층의 한 공간으로 들어섰다. 앞쪽에 ‘카디오캠(사진1)’이라는 이름의 거울이 나타났다. 일반 거울이 아니었다. 거울 앞에 서면 혈압과 맥박 등이 자동으로 측정된다. 거울 속에는 컴퓨터와 연결된 웹카메라가 숨어 있다. 원격측정 기술을 이용해 얼굴 등 신체의 생명 신호를 읽어내는 방식이다. ‘감성 컴퓨팅’ 그룹의 연구 프로젝트다. 다른 한쪽에는 ‘뉴미디어 의학’ 그룹과 바이오 메카트로닉스 그룹이 자리잡고 있다. 한 공간을 3개의 연구그룹이 같이 쓰는 이유는 역시 ‘융합’을 위한 것이다. 프로젝트가 다르다 하더라도 상대 팀의 연구를 보고, 대화를 나누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3층으로 올라가니 ‘감각형 미디어’ 등 4개 연구그룹이 한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 아이오 브러시(I/O Brush)라는 이름의 붓으로 체크무늬 옷감을 물감처럼 문지른 뒤 모니터에 붓질을 하자 옷감의 체크무늬 패턴과 같은 모양이 그려졌다. 마치 여러 색의 물감을 가죽조각에 묻힌 뒤 현란한 색의 그림을 그리는 ‘혁필(革筆)’을 컴퓨터화한 모습이다. 바로 옆 탁자 위엔 향수병(사진2) 3개가 놓여 있었다. 병뚜껑을 열자 향기 대신 음악이 흘러나왔다. 특정 공간에 물건을 던져만 두면 컴퓨터가 대상의 높낮이를 읽어 모니터에 등고선을 그려주는 장치(사진3)도 있다.

방을 나와 맞은편 공간으로 들어갔다. 요요마가 썼던 일렉트릭 첼로와, 하프를 연상케 하는 거대한 구조물 등 다양하고 신기한 악기들이 가득 차 있다. 미디어랩 창립멤버인 토드 매코버 교수가 이끄는 ‘미래 오페라(Opera of the Future)’ 그룹의 연구공간이다. 매코버 교수는 줄리아드음대에서 전자음악을 전공한 세계적인 음악가다. 그는 이곳에서 21세기 과학기술을 음악과 접목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 3월 보스턴 시내 한 콘서트 홀에서 열린 프로젝트 발표회 겸 오페라 공연 ‘죽음과 능력(Death and the Powers)’에서는 로봇 가수,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작동하는 여러 악기가 오페라 가수들과 같이 공연을 펼쳤다.

학부 시절 무용을 전공했다는 대학원생 엘리 제섭은 “‘죽음과 힘’은 지난해 9월 모나코 몬테카를로에서 첫 공연을 한 뒤 월드투어로 계속 진행되고 있다”며 “오페라 공연은 ‘과학기술과 전통음악의 만남·재해석’이라는 연구주제를 대중 앞에서 실제로 펼쳐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MIT 미디어랩은 신비한 초대형 마술상자였다. 6개 층 공간 곳곳에서 정의하기조차 어려운, 그러나 신기하고 놀라운 프로젝트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상상력의 천국’이라 불리는 이유다.

전체 연구 아이템만 하더라도 300개가 넘는다. 미디어랩 안에는 바이오 메카트로닉스나 미래 오페라와 같은 연구 프로젝트 그룹이 25개, 또 그룹별로 10개 안팎의 개별 연구 아이템이 있다. 각 연구 프로젝트 그룹을 이끄는 23명의 교수와 150명의 대학원생이 만들어내는 창작품이다. 여기에 프로젝트별로 방문 교수와 MIT 학부생, 후원 기업의 직원들도 연구에 힘을 보탠다. 그룹을 이끄는 교수는 ‘디렉터(director)’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학생들은 직장인처럼 저마다 미디어랩 로고가 그려진 명함을 가지고 있다. 대학원 석·박사 과정을 가진 교육기관이지만 마치 기업이나 연구소 같은 느낌이 더 강했다. 수업도 석사 과정이 한 학기 두 과목 정도, 박사 과정엔 아예 수업이 없다. 모든 게 연구 프로젝트 위주로 진행된다. 1985년 미디어랩 설립 당시 창설자인 니컬러스 네그로폰테 교수가 세운 공식적 교육 목표는 ‘미디어 예술과 과학의 만남’. 하지만 연구 주제 선정엔 사실상 제한이 없다.

그렇다고 미디어랩이 현실세계와 동떨어진 상상의 세계에만 갇혀 있는 것은 아니다. 공상과학(SF)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주인공 톰 크루즈가 허공에서 손으로 글과 그래픽을 편집하는 가상 스크린, 아마존의 전자책 리더기 킨들에 사용되는 전자잉크, 구글의 스트리트 뷰, 개도국 어린이들에게 나눠주는 100달러짜리 노트북 XO(사진4) 등이 이곳에서 나온 대표 상품들이다. 인텔 등 세계 60여 개 기업이 미디어랩을 구체적 대가 없이 후원하는 이유다. 여기엔 우리나라 삼성전자와 현대차·KT·LG전자 등도 포함돼 있다. 미디어랩의 연중 최대 이벤트는 봄·가을로 열리는 ‘스폰서 위크(Sponsor Week)’다. 그간 진행된 교수와 학생들의 연구 성과를 미디어랩 스폰서들에게 보여주는 행사다.

연구 총책임자인 미첼 레즈닉 교수는 “기업은 개별 연구 아이템이 아닌 미디어랩 전체 차원에서 후원을 하도록 돼 있다”며 “연구원들이 연구소를 후원하는 기업이나 개인으로부터 독립적인 이유가 바로 이런 시스템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디어랩의 특징 중 하나는 다양성이다. 23명 교수진 모두 같은 전공이 없다. 학생들도 전문성과 다양성을 최우선 기준으로 선발된다. 학생들의 배경도 다양하다. 전체 150명 석·박사 학생 중 70% 정도는 공대생이지만, 디자인·심리학·음악·무용·의학 등 학부 전공이 제 각각이다.
여름학기 졸업을 앞둔 박사과정의 정재우(41)씨는 “한국은 교수님 입김이 너무 강해서 학생들이 창조적으로 생각할 수 없다”며 “여기서는 각 그룹의 연구목표만 맞으면 스스로 아이템을 찾아 연구하면 된다”고 말했다.

미디어랩을 나서면서 앨릭잰드라 칸에게 이곳의 모토가 뭐냐고 물었다. 그는 “일반 대학 연구소나 대학원의 모토가 ‘논문을 펴내느냐 아니면 망하느냐(publish or perish)’라면 미디어랩은 ‘보여주느냐 아니면 죽느냐(demo or die)’”라고 말했다.

[출처 : 케임브리지(매사추세츠)=최준호 기자 | 제222호 | 20110612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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